건반 치는 순간과 소리 나는 순간 사이의 그 간격
건반을 딱 눌렀는데 ‘퉁’ 하고 소리가 0.2초 뒤에 나옵니다. 처음엔 케이블이 문제인가, 건반이 고장 난 건가 싶어서 이것저것 바꿔봐도 그대로입니다. 매장에서도 자주 듣는 질문이 “건반 샀는데 DAW에서 소리가 왜 이렇게 늦게 나와요?”입니다. 원인은 거의 항상 하나 — 버퍼 사이즈(Buffer Size) 설정입니다.
이 글에서는 집에서 바로 할 수 있는 3단계로 정리합니다. 장비 살 필요 없이, 소프트웨어 설정만 건드려서 해결됩니다.
먼저 알아둘 개념 두 가지
레이턴시(Latency)는 신호가 들어온 뒤 소리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지연입니다. 단위는 밀리초(ms). 사람이 체감하기 시작하는 임계점은 대략 10~15ms, 연주에 방해될 정도는 20ms 이상입니다.
버퍼 사이즈(Buffer Size)는 오디오 신호를 처리할 때 컴퓨터가 한 번에 담아두는 데이터 묶음 크기입니다. 숫자가 클수록(512, 1024) 처리는 안정적이지만 지연이 길어지고, 숫자가 작을수록(64, 128) 반응은 빠르지만 컴퓨터 부하가 높아집니다. 녹음할 땐 낮게, 믹싱할 땐 높게 쓰는 게 기본입니다.
준비물 확인
- 오디오 인터페이스 (또는 USB 마이크·USB 건반 직결 환경)
- 오디오 인터페이스 드라이버 —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최신 버전 (이게 안 깔린 경우가 레이턴시의 절반 이상)
- DAW (Ableton Live / Logic Pro / Reaper / Cubase 등)
- Windows라면 ASIO 드라이버 필수, macOS라면 CoreAudio가 기본 탑재
ASIO(에이시오)란? Windows에서 오디오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전용 드라이버 규격입니다. 일반 Windows 오디오(WDM)보다 레이턴시가 훨씬 낮습니다. 인터페이스 없이 PC 내장 사운드카드만 있다면 ASIO4ALL(무료)을 설치해서 쓸 수 있습니다.
1단계 — 드라이버부터 확인한다
- 오디오 인터페이스 제조사 홈페이지 접속 → 드라이버 최신 버전 다운로드·설치.
- DAW 설정 > Audio / 오디오 장치 항목에서 드라이버 타입을 확인합니다.
– Windows: ASIO 선택 → 장치 이름이 인터페이스 이름으로 뜨면 정상.
– macOS: CoreAudio 선택 → 입력·출력 장치를 인터페이스로 지정. - USB 마이크·USB 건반만 쓰는 경우(인터페이스 없음):
– Windows: ASIO4ALL 설치 후 DAW 드라이버를 ASIO4ALL로 변경.
– macOS: 시스템 설정 > 사운드 > 출력을 USB 장치로 지정 후 DAW 재시작.
이 단계에서 가장 흔한 실수: DAW가 여전히 기본 사운드카드(Realtek 등)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 드라이버를 설치해도 DAW 내부 설정을 바꾸지 않으면 그대로입니다.
2단계 — 버퍼 사이즈를 낮춘다
- DAW Audio 설정에서 Buffer Size(버퍼 사이즈) 항목을 찾습니다.
– Ableton Live: Preferences > Audio > Buffer Size
– Reaper: Options > Preferences > Device > Block Size
– Logic Pro: 파일 > 프로젝트 설정 > 오디오 > I/O 버퍼 크기 - 현재 값을 확인합니다. 512 또는 1024로 돼 있다면 128로 내립니다.
- DAW를 재시작하고 건반을 눌러봅니다. 체감 지연이 줄었는지 확인.
- 128에서도 소리가 끊기거나 클릭(튀는 잡음)이 생기면 256으로 올립니다. 끊김 없이 안정된 가장 낮은 값을 찾는 것이 목표입니다.
참고 수치 — 샘플레이트 44.1kHz 기준:
| 버퍼 사이즈 | 대략적 레이턴시 | 권장 상황 |
|---|---|---|
| 64 샘플 | ~3ms | 고사양 PC, 연주 전용 |
| 128 샘플 | ~6ms | 입문 인터페이스 녹음 기본값 |
| 256 샘플 | ~12ms | 플러그인 많을 때 타협점 |
| 512 샘플 | ~23ms | 믹싱 작업 전용 (연주 중 X) |
| 1024 샘플 | ~46ms | 마스터링·파이널 믹스 전용 |
3단계 — 직접 모니터링(Direct Monitoring)을 켠다
버퍼를 낮춰도 여전히 체감 지연이 있다면, 소리를 DAW를 통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설정으로 완전히 없애기 어렵습니다. 대신 직접 모니터링(Direct Monitoring) 을 켜면 해결됩니다.
직접 모니터링이란 — 입력 신호가 컴퓨터를 거치지 않고 오디오 인터페이스 내부에서 바로 헤드폰으로 나오는 방식입니다. DAW 처리를 건너뛰므로 레이턴시가 사실상 0입니다.
- 오디오 인터페이스 전면 패널의 Direct Monitor 또는 Mix 노브·버튼을 찾습니다.
- Direct Monitor를 켜거나 Mix 노브를 ‘Input’ 쪽으로 돌립니다.
- DAW 소프트웨어 모니터링은 끕니다 (DAW에서 트랙의 모니터 버튼 비활성화). 두 가지가 동시에 켜지면 소리가 두 번 들립니다.
인터페이스 없이 USB 마이크(예: RODE NT USB Mini)를 쓰는 경우 — 일부 모델은 마이크 몸체에 헤드폰 잭이 달려 있어 직접 모니터링이 됩니다. 이 잭으로 헤드폰을 꽂으면 DAW 없이도 입력 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흔히 막히는 것
“버퍼 낮추면 소리가 자꾸 끊겨요”
이 증상이면 보통 두 가지입니다. ① CPU 점유율이 높아서 — 백그라운드 프로그램(크롬, 스트리밍 앱 등)을 다 끄고 시도. ② USB 허브를 통해 연결됐을 때 — 인터페이스를 PC 본체 USB 포트에 직접 연결하세요. 허브를 거치면 전송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설정 다 했는데 DAW에서 여전히 엉뚱한 장치로 소리 나와요”
DAW를 재시작해도 안 되면, 컴퓨터 자체를 재부팅한 뒤 DAW만 먼저 열고 인터페이스 연결 순서를 확인하세요. 인터페이스가 먼저 연결된 상태에서 DAW를 여는 것이 원칙입니다.
“USB 건반인데 왜 소리가 안 나요”
USB MIDI 건반은 소리를 내는 장치가 아닙니다. 건반은 ‘어떤 음을 눌렀는지’ 신호(MIDI)만 보내고, 소리는 DAW 안의 소프트웨어 악기(VST 플러그인)가 냅니다. DAW에서 MIDI 트랙에 악기 플러그인이 로드됐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이것만은 외워두기
- 녹음할 땐 버퍼 낮게(128 이하), 믹싱할 땐 높게(512 이상)
- Windows라면 ASIO 드라이버 필수 — 일반 Windows 오디오로는 한계가 있다
- 직접 모니터링 켜면 레이턴시 고민의 절반이 사라진다
- 버퍼를 아무리 낮춰도 끊김이 생긴다면 장비 업그레이드보다 PC 최적화(백그라운드 정리, USB 직결)를 먼저
이 세 가지만 챙겨도 “건반 치면 소리 늦게 나온다”는 문제는 대부분 잡힙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인터페이스 모델별로 드라이버 이슈가 있는 경우도 있으니, 제조사 포럼이나 매장에 모델명과 OS 버전을 같이 알려주고 문의하는 게 가장 빠릅니다.




